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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말 밤이 긴 독일 뮌헨의 저녁 날씨는 선선했지만 여전히 더운 낯의 열기와 땀으로 이미 달아오른 몸은 그냥 숙소로 돌아가려는 마음을 붙잡고 늘어졌다.

'이봐 친구. 여긴 뮌헨이라고. 맥주의 도시라니까..'

'맥주는 독일 도착한 이후 일주일 내내 먹고 있는데 무슨 맥주를 또 해?'

'이봐.. 이봐.. 지금까지 먹은 것은 다 가짜야. 한라산 소주 서울에서 먹어봐. 맛없잖아'

묘하게 설득되는 논리에 감탄하며 나의 발길은 자연스럽게 유명한 맥주집을 찾아 관광객으로 이미 북적이는 마리엔 광장을 향하고 있었다. 뮌헨시 관광의 핵심이자  여전히 오늘날에도 시 전체의 중심 역할을 수행하는 마리엔 광장은 신 시청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뱉어내는 다양한 언어로 이미 이국적 관광지의 분위기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오늘 나의 목적은 오직 맥주. 세계에서 제일 큰 규모를 자랑하는 '호브 브로이하우스'를 찾아 잠시 곁눈질만 주고는 황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구글 네비가 알려 준 데로 호프브로이 하우스는 마리엔 광장을 지나 구 시청사에서 이어지는 좁은 골목길 어귀에 있었다. 간판은 크지 않았지만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한산한 골목에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입구부터 북적대는 건물을 못 보고 지나가는 것도 힘든 일이니까.

'음. 역시 많군, 많아...'

많은 사람들을 보자 자리가 없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보다는 묘하게 역시 다를 것이라는 기대와 안심이 들었다. 사실 호프 브로이 하우스는 나름 뼈대 굵은 장소이다. 바로 지금 맥주집이 서 있는 자리는 1589년부터 역시 술 좋아하는 독일 왕실에 맥주를 공급하던 왕립 양조장이었고, 19세기 후반인 1897년부터는 양조장에 맥주 시음장을 같이 운영하면서 대중적인 독일 펍으로 탄생되었다. 한국으로 치면 세종대왕님이 좋아하시던 술집을 몇 백 년 후에 가서 마시는 것과 동일하려나.. 우선 관광객의 마음을 잡아끄는 스토리텔링이 마음에 들고, 세계 최대 규모의 맥주집이라는 점이 호기심을 잡아 끈다.

총 3천 명이 한꺼번에 들어가 건배를 외칠 수 있는 이 거대한 맥주 소굴에는 다행히 아직 이방인을 맞이해 줄 빈자리가 있었다. 착석하자마자 바로 맥주를 주문하고 싶었지만, 족히 키가 190은 됨직한 우리 바바리안 웨이터님은 바쁘시다. 대신 바이에른 전통 복장을 입은 젊은 처자들이 프리첼 바구니를 들고 다니며 짭조름한 맛을 팔고 계신다.

 

이 집에서 누구나 기본으로 시키는 1리터짜리 조끼로 한잔을 받아 들고 시원하게 들이켠다. 꺄. 좋구나.. 오랜 역사만큼 수많은 유명 인사가 다녀간 집. 그중에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황제나 황후 같은 정치적 인물도 있지만 모차르트나 레닌 같은 분들도 있다. 레닌 형이 여기서 왜 나와? 그러고 보니 레닌도 독일 사람이었구나.

레닌은 "호프브로이에서는 훌륭한 맥주가 계급 간의 모든 차별을 없애준다"라고 감탄하였다는데... 동감한다. 혁명적인 맛이구나. 이봐 레닌 동무. 유물론적 관점에서 맛이라는 것은 그다지 믿을 만한 것은 못된다네. 하지만, 시간, 장소, 상황, TPO가 완벽한 순간에 맥주는 최고가 된다.

그러고 보니 1주일 뒤인 9월부터는 옥토버페스트 기간이구나. 이런 이런..

: 청주대학교 이 원준 (meetme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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