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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이 소비를 통하여 추구하는 욕망은 무엇인가? 그들은 더 이상 상품을 사지 않는다. 대신 그 상품으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가치를 구매한다. 가치의 본질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서 계속 변화하여 왔다. 시장의 공급 능력이 수요를 절대적으로 따라잡을 수 없던 생산 부족의 시대에는 기본적인 기능과 적절한 품질만으로도 대부분 소비자의 가치는 충족되었다. 그 이후 생산과잉과 기업 간 경쟁, 제조 기술의 평준화로 인하여 소비자의 선택지가 더 넓어진 시대로 바뀌면서 기업이 충족시켜야 하는 고객 가치의 대상은 기본적인 품질에서 가격 경쟁력, 하이테크, 디자인, 정서적 만족감 등으로 다양하게 진화되어 왔다. 고객이 변덕스러운 것처럼 보이지만, 고객 가치의 진화는 일반적으로 큰 흐름을 타고 변화하고 있다. 이성적인 제품 속성에서 감성적인 제품 경험으로, 물리적 속성에서 도덕적 속성으로, 단기적 평가에서 장기적 평가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업무 생산성을 강조하던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폰은 감성적 디자인의 애플 아이폰에 밀려 시장에서 완전히 퇴출되었고, 편리함만을 추구하던 플라스틱 패키지 디자인은 이제 지구 환경보호에 적합한 재활용 패키지에 밀려 사라지고 있다. 브랜드들 역시 단기적 매출 증대보다는 고객과의 장기적 관계 구축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최근 소비자의 마음을 여는 가장 중요한 가치들은 단연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도덕적 가치와 소비자의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가치이다. 이 두 가치는 미래 마케팅 활동의 양대 축의 역할을 하고 있으나, 그 지향하는 바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소비자의 기대는 기업이 우리 사회 전체를 위하여 무엇인가 선한 행위를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소비자 본인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더라도 해양 쓰레기를 줄이거나 아프리카의 불우 청소년을 지원하는 행위는 누군가가 해주어야하는 일이며, 나를 대신하여 기업이 기여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저변에 깔려있다. 일정 부분 나의 책임을 기업이 대신 맡아줌으로써 개인의 죄책감을 덜 수 있으며, 이에 대한 개인의 보답으로 기업의 평판은 높아지고, 구매 의도도 높아질 수 있다. 그러나, 착한 오빠보다는 나쁜 남자에 끌리기 쉬운 것처럼, 착한 기업이 잔잔한 감동을 줄 수는 있지만 어떤 강렬한 소비 욕구나 브랜드에 대한 매혹을 느끼게 하기는 어렵다. 유사한 대의명분을 표방하는 다수 기업의 등장도 문제다. 이로 인하여 고객의 구매가 계속되거나 지속적인 관심을 끄는 것도 쉽지 않다. 한 때 운동화 한 켤레를 사면 다른 한 켤레를 아프리카의 가난하고 헐벗은 청소년에게 기부하는 마케팅으로 관심을 끌었던 '탐스 슈즈'가 최근 매출 하락과 관심 부족으로 법정 관리의 위기에 처한 것이 이를 반증한다.

반면에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 충족을 목표로 하는 가치는 오롯이 소비자 자신만을 위한 가치이다. 라이프스타일은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생활양식, 행동양식, 사고양식과 같은 생활의 문화적, 심리적 차이를 의미한다. 라이프스타일은 소중한 나를 평범한 타인과 구분하게 하는 강력한 자기표현의 단서이며,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스스로 이해하거나 타인에게 알리는데 도움이 된다. 남을 의식하거나 복잡한 사회 문제의 간섭 없이 나만을 위한 소비, 나에 의한 소비 활동을 가능하게 한다. 구매와 소비의 원초적 목적인 나를 채워준다는 목표에 가장 충실하면서도 부끄럽고 은밀한 본능적 욕구가 아니라 세련되고 고차원적인 문화적 욕구여서 거부감이나 죄책감도 들지 않는다. 그 결과 라이프스타일을 충족시켜주는 상품이나 가치에는 손쉽게 매혹되고 설득된다. 오늘날 많은 기업들은 라이프스타일의 상업적 가치에 주목하고 있으며, 본인들이 더 이상 '상품을 파는 기업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을 판매하는 기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상품보다는 라이프스타일을 판매한다고 주장하는 기업은 이제 국내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2015년 개장함 현대백화점 판교점은 백화점 매장을 마치 가로수길 번화가의 맛집 골목처럼 꾸미고 여유로운 도시 전문직 종사자의 발길을 끌고 있으며, 현대카드는 이태원에 현대카드 스토리지라는 독립 공간을 통하여 카드사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에 적합한 공연, 전시, 체험행사 등 예술 행사를 개최하고 있는 실정이다.

 

라이프스타일을 제공한다는 점을 표방하는 잘 알려진 대표적인 사례는 일본의 '츠타야 서점'이다. 츠타야 서점은 한국의 교보문고가 2015년 대대적인 매장 리뉴얼을 하면서 벤치마킹한 대상으로 잘 알려져 있다. 리뉴얼 당시 교보문고는 오프라인 매장을 책이 파는 공간이 아니라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재정의하였고, 거대한 소나무 테이블의 도입, 자연광이 들어오는 매장, 도서 진열대 사이에 배치한 의자 등을 통하여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도록 공간을 재구성하였다. 그러나 시설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츠타야 서점이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 가치는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였다는 아쉬움도 크다. 일본의 츠타야 서점은 스스로를 '고객의 취향을 설계하는 곳'으로 자부하고 있으며, 방문한 고객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것을 기업의 목표로 삼고 있다. 우선 지역별 각기 다른 고객의 취향을 반영하여 일본 전국에 퍼져 있는 각 지점의 시설과 인테리어는 특색이 있게 꾸며져 있다. 최근 도쿄 긴자 식스에 입주한 '츠탸야 긴자'점은 한국의 청담동처럼 유행과 패션의 중심지에 있으며, 방문 고객들 역시 도시 전문직의 라이프스타일이 대부분이다. 이에 따라 매장 내부는 다양한 예술품과 설치 미술품으로 꾸며져 있어 책과 함께 공간 자체를 즐길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반면에 고급 주택가가 인접한 지역인 다이칸야마의 츠타야는 녹지와 자연과의 조화를 통하여 차분한 일상 속의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지만 츠타야를 다른 서점과 차별화시키는 강력한 요소는 시설이 아니라 소프트웨어이다.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을 즐길 수 있는 최적의 장소를 제공하는 능력이다. 츠타야 서점을 서점에 입주한 커피점을 통하여 커피를 사서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원하는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는 공간이며, 필요시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확장할 수 있는 도움도 받을 수 있다. 츠타야의 판매원은 보통 해당 분야에 상당한 경험이 있는지가 선발의 우선 조건이라고 한다. 일 예로, 여행 서적 코너의 판매원은 실제로 수년간 전세계를 배낭여행을 한 경험이 있는 직원이 선발되며, 이들은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더 좋은 책을 추천하거나 큐레이션 해주고 여행에 관한 다양한 경험을 공유할 수 있다. 책은 어디서 누가 팔든 똑같기 때문에 차별화가 극히 곤란한 상품이지만,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배려나 경험의 확장을 통하여 고객을 흡인하고 있다.

또 다른 일본 기업인 무지, 혹은 무인양품 역시 제품보다는 라이프스타일을 중심으로 시장을 접근하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이다. 무인은 곧 브랜드가 없다는 뜻이며, 양품은 좋은 제품이라는 뜻이다. 무인양품은 브랜드 없는 브랜드라는 콘셉트와 마케팅 철학으로 거창하거나 화려한 마케팅 없이 조용하게 고객이 삶 곳곳으로 스며드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무인 양품은 고객의 생활에서 느끼는 불편을 해소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단순한 상품 판매보다는 새로운 삶의 방식, 즉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기업이 되고자 노력한다. 무인양품은 소박하고 장식이 없는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고 있으며, 공예품이 주는 '쓸모의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그리고 각각의 상품을 판매할 때도 왜 이런 상품을 만들게 되었는지 설명한다. '푹신 소파', '목 따끔거림이 적은 스웨터'와 같은 상품명으로 상품의 편익을 솔직하게 직접 전달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무인양품 매장은 세계 곳곳에 있지만 국내 최대 규모로 개장한 서울 종로의 영풍문고에 있는 매장을 찾아가 보자. 우선 영풍문고라는 대형 서점에 숍인 숍 형태로 들어온 것 역시 무인 양품의 철학과 관련이 있다. 매장의 입구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질 좋은 면으로 만든 의류와 바구니, 슬리퍼 등 다양한 생활 소품이다. 매장 안쪽으로 들어가면 가습기, 의류, 식품, 필기구, 생활용품 등 다양한 상품들을 만날 수 있으며, 진열된 위에 설치된 광고 스크린에서 제품과 관련된 영상들이 흘러나온다. 영상에서는 어떻게 제품이 기획되고 생산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영상과 고객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이 제품의 장점을 알려준다. 이 화면은 단순 광고가 아니다. 무인양품이 생각하는 좋은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고, 거기에 적합한 상품을 설명하고, 고객의 생활에 대한 기업의 철학을 전달해내는 도구이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고객이 간단하게 쉬어가거나 다과를 즐길 수 있는 공간도 있다. 이 카페 공간에서는 무인양품에서 구입한 식품이나 다과, 차 등을 직접 먹어볼 수도 있고, 무인양품이 발행한 요리나 인테리어에 관한 책들을 보면서 어떤 제품을 구매해야 할지 점검해볼 수도 있다. 단순한 판매 공간이 체험공간으로 체험 공간이 삶의 공간으로 이어지는 방식이다. 

무인양품은 세일이나 과다한 마케팅으로 단순히 고객의 숫자를 늘리기보다는 무인양품의 사상에 공감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들이 원하는 상품 구색을 꾸준하게 넓혀왔다. 무인양품이 제안하는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품목이라면 굳이 상품의 종류를 제한할 필요도 없으며, 무한하게 확장이 가능하다. 무인 양품이 추구하는 더 나은 삶에 어울리는 물건이라면 무엇이든 팔 수 있다. 일반적인 무인양품의 매장에서도 미니멀리즘을 반영한 공예품, 가구, 필기구, 의류, 차, 식품 등 이미 다양한 구색의 상품들을 취급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조립식 주택에 이어서 호텔업에까지 진출하고 있다. 실제로 무인 양품은 2018년부터 중국 선전, 베이징, 일본 도쿄의 긴자 등에 호텔을 개장하였다. 이들 지역은 이미 수 많은 호텔들이 경쟁하고 있는 지역이기 때문에 왜 무인양품이 호텔까지 진출하는지, 무분별한 사업 확장은 아닌지 의아해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호텔은 무인양품에게 있어서 단순한 숙박 시설이 아니라 무인양품이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을 가장 잘 보여주고 경험하게 해 줄 수 있는 최상의 장소이다. 기존에 무인양품은 라이프스타일에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을 판매하여 왔는데, 그 상품들이 모여있는 총합의 공간이 주택이자 호텔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자연스러운 확장이다. 무인양품 호텔은 무인양품의 제품과 철학으로 채워진 호텔이다. 호텔의 서비스, 접객, 그리고 무인양품 상품으로 꾸며진 객실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접목하여 '좋은 느낌의 생활', '지구와 자연, 그리고 생산자를 배려하는 정돈된 삶'과 같은 철학이 구체화된 완벽한 공간을 경험하게 하였다.

: 청주대학교 이 원준 (meetme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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