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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상품 모두를 한 곳에서 손쉽게 구매할 수 있고, 이와 더불어 놀이, 휴가, 모임 등 편의시설까지 두루 잘 갖추어놓은 대형 쇼핑몰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유통 트렌드로 정착되었다. 최근까지 화제를 모으며 서울 코엑스, 하남시와 고양시에 속속 개장한 신세계 그룹의 복합 쇼핑몰인 스타필드는 볼거리, 놀거리, 즐길거리의 삼박자를 두루 갖추고 고객들을 흡인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대형 쇼핑몰의 성공이 소상공인에게까지 혜택이 두루 돌아가지는 않는다. 스타필드의 출점은 지역 소상공인들에게는 재앙처럼 다가오고 있으며, 기존 상권의 붕괴로 전통시장이나 상가의 고객 수가 눈에 띄게 감소되었을 뿐만 아니라, 차량 증가로 인한 교통난 가중, 주차난으로 인한 근처 주민들의 불편 같은 부작용도 따라붙게 되었다.

소상공인 입장에서는 이런 대기업의 적극적인 동네 상권 진출이 결코 반가울 수 없다. 그러나 태생적으로 결코 모방할 수 없는 강력한 자본력과 마케팅 노하우를 가지고 동네 상권에 체계적으로 진입하는 대기업 시장을 막아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름대로 생존을 모색하기 위하여 전통시장의 시설을 개선하거나, 소상공인 대상의 마케팅 교육 등도 활성화하고는 있지만, 이런 대응만으로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그러나 위기는 새로운 기회라고 하지 않는가? 소상권인들이 전례 없는 큰 위기에 처한 지금, 남과 다른 생각, 남과 다른 자신만의 방식으로 경쟁을 헤쳐 나가는 역발상의 소상공인들과 지역 상권들도 존재한다. 이들의 전략을 살펴보면 자신만의 스토리, 문화, 그리고 상생이라는 몇 가지 공통적인 특성을 보인다.

첫째, 우리 지역만의 고유한 스토리가 우리의 가장 큰 경쟁력이 될 수 있다. 고객들에게 우리만이 가진 뿌리 있는 이야기를 만들고 들려주고,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감성 마케팅을 진행하여야 한다. 스토리를 이용한 스토리텔링 마케팅은 브랜드를 알리는 것뿐만 아니라 드라마, 영화, 관광, 유통 등 마케팅 전반에 걸쳐 활용되고 있다. 최근 한국의 포항이나 경주 지역에도 지진이 빈번해지고 있지만 일본에서의 지진 피해는 상상을 불허한다. 일본 고베시는 지난 1995년 한신 대지진을 겪으면서 전체 건물 중 80%가 완전히 붕괴하거나 재기 불능의 폐허로 변해 버렸다. 이후 지진 피해가 복구되고, 과거 상권의 중심지였던 신 나카타 역과 근처의 전통 시장을 중심으로 최신식 상가들이 다시 조성되었지만, 사람들은 마음속에서 지워버린 이 지역을 더 이상 방문하려 하지 않았다. 재건에도 불구하고 절명의 위기에 빠진 상인들은 삼국지나 철인 28호 등의 만화로 유명한 만화가 요코야마 미츠테루가 이 지역 출신임을 기억해내고, 본격적인 ‘마치즈쿠리(まちつくり)“, 즉 거리 만들기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에는 상점가 입구에 로봇인 철인 28호의 실제 크기인 거대한 동상을 만드는 것이었다. 높이 18m에 달하는 동상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총 1억 3,500만 엔의 비용 중 일부인 4,500만 엔은 고베시가 지원했지만, 나머지 비용은 철인 28호에 향수를 가지고 있던 전국의 팬과 지역 상인들의 공동모금 형태로 조달하였다. 그리고 신 나카타 지역 상점가 곳곳에는 미츠테루의 만화 주인공들인 철인 28호와 관우, 장비, 초선 등 삼국지 인기 인물들을 소재로 한 팬시상품, 사진관, 동상들을 곳곳에 배치하였고, 주말마다 직접 상인들이 분장하고 만화 주인공으로 코스프레하기도 하였다.

<마치즈쿠리와 철인28호>

이런 노력의 결과, 이 전통시장은 미츠테루의 팬이거나 팬이 아니더라도 과거 만화영화에 향수를 가진 사람이라면 꼭 한번은 가보고 싶어 하는 장소가 되었고, 주말이면 어린 자녀의 손을 잡고 멀리서도 방문하는 명소가 되었다. 한 때 적막하였던 상점가의 분위기도 완전히 바뀌었고 주말에는 하루에 6만 명이 방문하는 등 과거 명성 이상으로 회복할 수 있었다. 이것이 고객이 공감할 수 있고,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스토리의 힘이다. 최근 이와 유사한 사례로 수원에서는 화성행궁과 수원 재래시장 등을 연결하는 화성 어차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둘리, 로봇 태권 V, 하니 같은 만화 캐릭터도 적지 않고, 무엇보다도 5천 년 역사의 유구한 스토리가 전국 구석구석에 없는 곳이 없지 않은가? 스토리는 없는 이야기를 억지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공감할 수 있는 자기 지역만의 이야기를 찾아내는 것이다.

둘째, 문화는 사람을 모으고, 사람이 모이면 상권이 된다. 최근 국내에서 가장 핫한 플레이스를 꼽으라면 강남이나 명동도, 가로수길도 아닌 한 때 허름하였던 강북의 한 지역을 꼽아야 한다. 바로 구두약과 가죽 약품 냄새가 가득 차있던 성수동이다. 이 지역은 서울숲역에서 뚝섬역을 거쳐 성수역에 이르는 지역이다. 과거에는 가죽 원단을 가공하거나 수제화를 제작하던 공장, 레미콘 공장 등이 밀집해있던 서울의 대표적인 낙후 지역이었지만, 최근에는 개성 있는 개인 공방이나 카페들이 속속 생겨나면서,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매력적인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성수동이 겪고 있는 변화는 다이내믹하지만, 그 중심에는 허름한 창고였던 성수 대림창고가 있다. 창고란 물건을 오랫동안 쌓아놓는 장소이다 보니 대부분 천장이 높고, 매우 큼지막하고 허름하고 오래된 건물들이 대부분이다. 70년대 만들어진 성수 대림창고 역시 이런 전형적인 낡은 창고에 불과하였다. 그런데 한 공연기획사에서 건물 외관을 그대로 유지한 채 패션쇼와 같은 패션 관련 이벤트와 음악회, 전시회, 공연 등 다채로운 이벤트를 개최하면서 성수동에도 문화의 바람이 불어오게 되었다. 시간을 이기지 못하고 건물 외관과 내부 모두 낡고 노후화된 창고의 분위기가 최근 화려한 꾸밈보다는 자연스러운 공간을 선호하는 문화적 분위기, 그리고 높은 천장이 주는 로프트(loft)한 개방감 때문에 문화의 명소로 자리 잡게 되었고, 이런 행사가 활성화되면서 자연스럽게 패션이나 문화계의 핫 피플들이 이용할만한 카페나 레스토랑, 공방들이 따라 입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후 대중적 문화의 최종 소비층인 일반인들도 점차 유입되면서 성수동은 제2의 부흥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성수동 대림창고>

이처럼 낙후 공장이나 지역이 문화를 발판으로 매력적인 상권으로 변화하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이며, 도시 재생의 열풍 또한 뜨겁다. 폐공장을 개발한 뉴욕의 브룩클린 지역이나 중국의 소호라고 불리는 북경의 798 예술구 등도 성수동과 유사한 방식으로 상권이 형성된 사례들이다. 사람들의 경제 수준과 소비 수준이 선진국 단계로 올라설 때, 문화는 가장 매력적이고 카피가 힘든 경쟁 자산이 될 수 있다. 지역이나 상권에 문화를 접목하는 것은 처음에는 문화를 만드는 크리에이터(creater)들을 모으고, 그들을 지원하기 위한 카페, 식당, 공방 등 근린 상권을 형성하게 되고, 궁극적으로는 문화를 동경하거나 향유하려는 다수를 지역으로 불러 모은다. 그리고 이들이 그 지역에 오래 머물만한 이유를 찾을 때, 고객들은 기쁜 마음으로 기꺼이 지갑을 열 것이다.

<북경 798예술구>

셋째, 싸우지 않고 이기는 법, 상생은 항상 소상공인의 최우선 경쟁 전략이 되어야 한다. 최근 재래 동네상권이 재개발되면서, 대기업과 전통 상인 간의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바로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의 문제이다. 재개발이나 재건축으로 구도심의 상권이나 생활 여건이 개선되면서 중상류층이 다시 유입되고, 상가의 임대료가 오르면서 이를 감당할 수 없는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성수동 역시 한때 급격하게 증가한 임대료로 위기를 겪었지만, 지자체와 건물주, 임차인 등이 참여한 상생협약을 통하여 젠트리피케이션을 힘겹게 막고는 있다. 그러나 더 높은 수익을 창출하려는 자본의 속성은 결국 어떤 형태의 협약도 위태롭게 할 것이다. 자본은 경쟁의 가장 강력한 무기임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주변에 새로 생긴 대기업 마트에 대항하기 위하여 원가 세일이나 폭탄 세일을 감행한 동네 슈퍼 중에서 성공적으로 살아남은 사례를 본 적이 있는가? 적어도 주변에서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기업에게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거나 강력한 규제를 가하는 것도 최선은 아니다. 사실상 대부분의 기업들에게 있어서 사회적 책임은 진정성이 다소 부족한 홍보나 광고 전략과 다를 바 없으며, 규제는 결국 여러 편법으로 빠져나가는 풍선 효과를 불러오기 다반사임을 애써 외면할 필요는 없다. 자본의 횡포에 대한 규제는 반드시 있어야 되지만, 거기에만 의존하기에는 너무 위험하다. 결국 가장 모범적인 답안은 대기업과 소상공인이 서로에게 가치 있는 파트너, 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운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에 가장 눈길을 끄는 사례는 중국 알리바바와 동네 점포와의 상생전략이다. 알리바바가 어떤 기업인가? 최근 중국의 최대 쇼핑 대목인 광군제(11월 13일) 하루 동안 한국 돈으로 28조원의 매출을 올린 유통 공룡이다. 이런 알리바바가 최근에 공을 들이고 있는 사업이 있다. 바로 텐마오(天猫)다. 알리바바가 추진하고 있는 허마셴성, 타오 카페 등 다양한 신유통 혁명 속에서도 유독 텐마오가 돋보이는 것은 대기업과 지역상권이 서로를 파트너로 인정해야만 가능한 사업이기 때문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이미 중국의 동네 점포나 슈퍼들은 로손이나, 패밀리마트 같은 편의점의 잇따른 진출로 폐점을 기다리는 고사 상태나 다름없었다. 대기업 편의점의 체계적인 점포관리, 깔끔한 매장 인테리어, 우수한 상품의 개발과 공급을 일개 동네 점포가 이겨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알리바바는 이런 점포들을 대상으로 자사의 온라인 쇼핑몰인 티몰(Tmall)의 선별된 우수 제품을 온라인 판매가격과 동일한 저가에 판매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아울러 매장의 인테리어와 간판 등을 무료로 개선하여 주변 편의점과 시설 면에서도 경쟁할 수 있게 해 주었고, 빅데이터 기반의 상권분석, 고객관리가 가능한 스마트 매장관리 시스템과 최신 물류시설도 무료로 제공해주었다. 그 반대급부로 알리바바가 요구하는 것은 단지 전체 판매상품의 30%를 알리바바의 B2B 쇼핑몰에서 구입하고, 기술자문료로 매년 3,999위안(한화 67만 원)을 내는 것뿐이었다. 알리바바는 텐마오를 중국 전역의 600만 개 골목 가게로 확대하여, 신유통 생태계에 편입시키고자 한다. 이제는 개별 기업이나 점포의 경쟁에서 시스템의 경쟁으로 확대되고 있고, 다시 시스템을 관리하는 시스템의 경쟁으로 경쟁이 네트워크화되고 있다. 기업의 규모가 크고 작고를 떠나서, 자본의 크고 작음을 떠나서 이제 개별적 노력과 성실만으로 성공하기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나의 가치를 이해하고 기꺼이 수익을 나눌 수 있는 파트너를 찾아 같이 번영하는 방안에 대한 고민 없이는 그 누구도 장기적 생존과 번영을 기대하기 힘든 시대이다. 자신만이 가진 고유한 가치가 무엇인지 확인하라. 평소에 쓸모없다고 느낀 것도 때로는 상대방에게 큰 가치가 될 수 있다. 낡은 구멍가게지만 가장 로컬한 비즈니스인 유통에서는 입지 자체가 가장 매력적인 가치가 되는 것처럼 자신의 가치를 먼저 재정의해보자. 그리고 가치의 공유를 통하여 같이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나가야 할 것이다.

: 청주대학교 이원준(meetme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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