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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여행이 보편화된 사회에서 여행은 지친 삶에 쉼표가 되는 시간이다. 많은 사람들이 온전한 휴식을 위해서 여행을 떠난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여행을 즐기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어렵게 떠난 여행이건만 여행을 마치 전쟁처럼 치러내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빽빽한 살인적 스케쥴에 맞춰 며칠 걸려도 돌아보기 힘든 명소나 미술관 등을 하루에 서너개씩 보러가기도 하고, 기껏 5성급 비싼 호텔을 잡았건만 호텔의 부대시설이나 분위기를 즐길 틈 조차 없이 새벽부터 밤 까지 바쁘게 다닌다. 마치 밀린 일을 하듯 여행지를 섭렵하고, 가장 효율적인 여행을 하기 위하여 최단 시간에 최대한의 경험을 하려고 무리한다. 매 순간을 눈에 담기보다는 사진에 담기 위해서 노력하다보니 여행 사진이라기보다는 방문을 확인하는 출장 증빙같은 사진들이 넘쳐난다. 이래서야 여행이 휴식이 될 수 없다. 재충전은 커녕 오히려 몸도 마음도 지쳐 여행 휴유증이 생길지도 모른다. 이런 여행은 피곤하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나 자신이 나를 지나치게 몰아친다. 여행뿐만 아니라 학업이나 일상 생활에서도 우리는 한 시도 쉬지 않고 빨리빨리를 요구받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래서야 제대로 놀 틈이 없다. 

 

 

일찍이 1938년, 사회학자인 호이징아(Huizinga)'는 인간의 미래는 일이나 업무가 아니라 놀이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즉 '호모 루덴스', 즉 행복을 추구하기 위하여 놀이하는 인간이 삶의 권리이자 의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인생의 본질이 직장에서의 성취나 일과는 무관한 것이며, 의식주 해결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 이외의 모든 것들은 놀이를 좋아하는 인간의 충동이 만들어낸 산물이라고 주장하였다. 일예로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 즉 호모 파베르는 사물의 유용성과 쓰임새만을 고민한다. 호모 파베르는 추우면 추위를 피하고, 배고프면 배를 채우는 기본적인 요구에만 만족하지만 호모 루덴스는 이왕이면 맛있고 아름다운 음식, 추위와 멋을 모두 해결할 수 있는 패셔너블한 옷을 원한다. 즉, 제품의 용도가 아니라 놀이로 인한 재미가 인류 문명의 원동력이 되어 왔다고 주장한다. 호모 루덴스는 타인의 강요에 의하여 움직이지 않으며, 자신이 좋아할 때만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존재들이다. 재미만 있다면 누가 권하지 않아도 스스로 빠져드는 현대 소비자의 모습이 바로 호모 루덴스의 모습이다.

 

 

인간이 선천적으로 놀이꾼이라는 주장은 마케터에게는 매우 반가운 소식이다. 유사한 상품을 판매하는 수 많은 경쟁자를 제치고 자사의 상품이 소비자의 관심을 끌도록 노력하는 것이 마케팅 성공의 첫 단추나 다름없는데, 호모 루덴스는 재미만 있으면 어렵지 않게 이목을 끌수 있음을 주장한다. 특히 이런 특징들은 '게이미피케이션', 즉 게임 같은 방식의 적용으로 마케팅에 본격적으로 활용된다. 게이미피케이션이란 재미와 놀이를 추구하는 호모 루덴스의 본능을 이용하여, 상품과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의 만족감을 높이기 위하여 다양한 활동을 게임 형태로 전개하는 것이다. 게이미피케이션은 우리 주변에서 다양하게 목격된다. 스타벅스는 리워드 앱을 통하여 스탬프를 모으게 하고, 스탬프 갯수에 따라 무료쿠폰이나 선물을 지급하는 게임의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 고속도로 휴게소의 남성용 화장실에서 소변기에 파리 스티커를 붙여놓음으로서 깨끗한 소변기를 관리하는 것도 경쟁을 이용한 게이미피케이션이다. 어려운 회계 이론을 쉽게 가르키기 위하여 블루마블 등 보드 게임을 직접 활용하는 게이미피케이션 사례도 국내외 대학에서 쉽게 발견된다. 최근에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소셜 미디어를 활용한 초성 퀴즈 이벤트도 빈번하게 시행되고 있다. 일 예로 영어 콘텐츠 기업인 시원스쿨은 "시원펜 도서는 ㅎㄱㅁㅇㄴ 영어책으로 한글을 영어로 바꾸는 연습 강조"라는 문장 속 초성의 정답을 맞추는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하였는데, 이 역시 게이미피케이션을 활용한 사례이다.

 

 

이처럼 재미, 보상, 도전, 경쟁 등이 버무려진 잘 만들어진 게이미피케이션의 조건과 관련하여서는 심리학자 '칙센미하이'가 주장한 플로우(flow)라는 개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에 의하면 플로우는 무엇인가에 완전히 빠져있어 주변과 시간까지 잊어버리는 몰아 지경의 심리적 상태를 의미하며, 주위의 모든 잡념과 방해물을 차단하고 오롯이 자신이 원하는 한 가지에 모든 정신과 에너지를 집중하는 것이다. 정말 좋아하고 재미있는 일을 할 때면 몇 시간이 한 순간처럼 빠르게 지나가고, 관심 대상과 하나가 된 듯한 일체감을 느끼며, 자신이 누구인지도 잊어 버리곤 한다. 만화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밤새 만화책을 보거나, 시간가는줄 모르고 당구를 치는 것과 같은 경험은 누구나 해보았을 것이다. 가끔 플로우를 몰입으로 번역하여 사용하기도 하는데, 일반적으로 개인의 의지가 개입되는 몰입과 무아지경의 플로우는 적지않은 차이가 있어서 번역하지 않고 사용하는 것이 더 일반적이고 정확하다. 놀기 위해 태어난 고객이 상품이나 브랜드에 대하여 재미를 느끼고 진정한 플로우 경험을 할 수만 있다면 이 이상의 최고 마케팅 목표는 있을 수 없다. 

플로우 경험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 조건이 있다. 첫째, 활동의 목표가 뚜렷하게 제시되어야 한다. 과업의 목표가 모호하거나 지나치게 장기적인 목표라서 달성이 현실감이 없을 때는 플로우 경험을 잘 일어나지 않는다. 마케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일 예로 매주 로또를 구매하는 사람들은 요행을 바라고는 있지만, 로또 구매로 인한 플로우는 느끼지 못한다. 너무 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기 때문이다. 경품 행사를 하는 경우에 어떤 상품이 주어질지 사전에 명확히 공지되지 않는다면,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 보다는 관심을 떨어트릴 가능성이 더 높은 것과 같다.

둘째, 활동에 대한 반응과 피드백은 즉각적으로 제공되어야 한다. 우리가 전자오락 게임에 쉽게 빠져드는 이유는 게임 조작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게임의 성패같은 결과가 즉각적으로 결정된다. 이런 빠른 반응과 피드백은 고객이 향후 어떤 행동을 해야지 더 쉽게 즐길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그 결과 브랜드 홍보를 위하여 일방향적인 TV 광고에 의존하는 경우는 감소하고 있으며, 직접 브랜디드 앱, 혹은 게임을 만들어 소통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일 예로 통합 마일리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OK캐쉬백은 자사 앱에서 간단하게 즐길 수 있는 아케이드 형태의 미니 게임을 제공하고 있으며, 포인트 적립도 보물찾기, 천포인트 페스티벌 등 이벤트와 연계하여 재미를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셋째, 플로우 상태를 심화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수행능력과 주어진 과제의 난이도가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너무 쉬운 과제는 흥미를 가지기 어려우며, 너무 어려운 과제는 지레 겁을 먹고 포기하게 한다. 개인의 능력과 과제 난이도는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데, 개인 능력에 비하여 과제 난이도가 지나치게 높으면 걱정이나 불안이 앞서고, 과제 난이도가 지나치게 낮으면 권태와 싫증을 느낀다. 따라서 플로우 경험을 유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고객을 잘 이해하고 적절한 수준의 도전 과제를 제시하여야만 한다. 관광에도 게이미피케이션이 적극 도입되고 있는데, 서울의 관광 명소인 '남산골 한옥마을'은 '남산 선샤인'이라는 체험 이벤트를 성공적으로 진행한 바 있다. 마치 한옥을 배경으로 한 유명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참가자들은 한옥 마을 곳곳을 탐방하고, 일본군 진지를 염탐하거나 민족 반역자를 제거하는 등 흥미로운 체험을 할 수 있었다. 넓은 한옥 마을 때문에 결코 쉽지 않은 도전 과제였지만 과제 수행을 도와주는 스마트폰 앱 활용, 곳곳에 비치한 안내판과 도우미 등을 통하여 대부분 재미있게 도전을 마칠 수 있었다.

 

 

: 청주대학교 이 원준 (meetme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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