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열렬히 지지하는 팬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팬 마케팅이 부각되고 있다. 과거에 팬 마케팅은 보통 대중음악, 미술, 스포츠 등 주로 예능 분야 종사자의 매니저나 마케터에 의하여 사용되던 마케팅 전략의 하나였다. 최초의 팬 마케팅이 등장한 것은 인디 음악가들이 자신들의 앨범, 즉 레이블을 판매하기 위한 노력에서 시작되었다. 마케팅 기반이 취약하고 방송과 음반 시장을 모두 장악하고 있는 대형 음반 기획사로부터 외면받았던 인디 음악가들이 자신들의 음반 판매를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콘서트를 통하여 직접 팬들에게 음악을 파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팬 마케팅을 위하여 인디 음악가들은 열성 팬이 누구인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였으며, 콘서트나 소셜 미디어를 통하여 이들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한국에서도 많은 팬들을 거느리고 있는 윤도현밴드, 새소년이나 잔나비 같은 밴드들도 처음에는 팬 마케팅으로부터 시작하였다. 그 후 주류 음악시장으로 진입한 이후에도 팬들은 견고한 응원부대가 되어 주었으며, 열렬한 지지와 강력한 구매력은 이들의 가치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었다. 세계적인 명성을 갖게 된 방탄소년단도 '아미'라는 열렬한 팬 집단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이들은 음반이나 캐릭터 상품과 같은 다양한 굿즈를 구매하여 수익 창출의 원동력이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팬층을 넓히는 강력한 나팔수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열성 팬과 직접적으로 하는 소통의 긍정적 영향력을 이해하게 되면서, 팬 마케팅은 이제 대중 문화나 예체능 분야를 넘어 고객 로열티를 갈구하는 기업이나 자영업자의 마케팅 영역까지 폭넓게 확산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유명 브랜드들 중에서도 나이키, 애플, 테슬라 등은 자신들의 팬을 잘 이해하고, 이들의 팬덤을 브랜드에 잘 접목시키고 있는 성공 사례 들이다. 그러나 팬 마케팅은 빛과 그림자가 존재한다. 열렬한 팬이 많은 브랜드일수록 브랜드에 반감을 보이거나 싫어하는 안티 팬 역시 존재하기 때문이다. 안티 팬들은 팬과는 반대로 브랜드에 대하여 부정적인 구전을 퍼트리고, 브랜드의 가치를 훼손한다는 점에서 위험한 존재들이다. 특히 부정적인 구전은 긍정적인 구전보다 더 큰 화제성과 파급력을 가지고 있으며, 출처 불명의 루머로 바뀌어 일반 대중에게 가십 거리가 되는 경향이 있어 기업 위기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강력한 소셜 미디어와 인터넷의 힘을 빌어 쏟아낸 악의적인 소문들은 캡처나 펌을 통하여 불특정 다수에게 전달되고 공유되며, 오랫동안 상처와 흔적을 남긴다.

그러나 사실상 팬과 안티 팬은 모두 같은 시작점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그것은 바로 관심이다. 관심이 아예 없다면 안티 팬이 될 수 없다. 안티 팬은 해당 기업에 대한 부정적 정보, 제품의 미비한 점, 고객 관리의 단점 등 정보와 약점을 매우 잘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지속적인 관심으로 이런 정보들을 수집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팬과 다를 바 없다. 실제로 모 방송국의 프로그램을 통하여 유명세를 탄 돈가스 전문점 '연돈'의 사례를 보자. 연돈은 방송에서 극찬을 받은 뒤 너무 많이 밀려오는 고객을 감당하지 못하여 정신적, 체력으로 지쳐 번아웃을 하게 되었다. 더욱이 몰려드는 고객 때문에 불편하다는 이웃의 민원까지 증가하자 결국 서울 포방터 시장에 있던 기존의 점포를 포기하고 제주도로 옮기게 된다. 가게를 옮기면서 사장 본인은 물론 많은 사람들이 예전과 같이 사람들이 몰려들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제주도는 거리도 멀거니와 갈치찜, 오겹살, 방어회 등 관광객들이 짧은 일정 동안 즐길 수 있는 특색 있는 먹거리가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흔한 메뉴의 고객 흡인력이 약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고 방송에 나온 그 집의 그 맛을 보기 위하여 사람들은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몰려왔다. 새벽부터 몇 시간씩 줄을 서는 것은 보통이고 밤샘 줄을 서는 경우도 빈번하였으며, 재료가 다 소진되면 줄을 서고도 돌아가야 하는 경우도 속출하였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런 요란한 과정 속에서 연돈 돈가스의 열렬한 팬도 증가하고 있지만, 적지 않은 안티 팬도 덩달아 생겨나고 있다는 점이다. 만족한 고객들은 인터넷 후기 등을 통하여 칭찬하기도 했지만, '비싸고 잡내 난다'는 유명 블로그의 비판 글은 사이버 댓글 전쟁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혀는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이는 지극히 주관적인 감각이고 그다지 신뢰할 만한 기관은 아니기 때문에 돈까스 맛의 선호에 대해서는 여기서 논할 필요는 없다. 흥미로운 점은 동일한 관심과 기대에서 출발한 고객들이 어떤 경로를 통하여 진정한 팬 혹은 안티팬으로 갈라지느냐는 점이다. 이와 관련하여 만족의 변덕스러운 속성과 자기 합리화를 하는 불합리한 인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선 기대가 팬심으로 바뀌는 과정에는 자기 합리화의 영향이 클 수 있을 것이다. '자기 합리화'는 심리학자 프로이트가 주장한 매우 고전적인 이론 중 하나이다.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한 이후에 발생하는 죄책감이나 불안감을 제거하기 위하여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자신이 옳은 선택을 했다는 확신을 스스로에게 줌으로써 심리적인 편안함을 추구하는 방어 기제이다. 이제 연돈 돈가스로 돌아가 보자. 보통 제주도로 여행을 갔다면 항공, 렌트, 숙박 등 적지 않은 경제적 비용을 지불한 후이다. 아울러, 휴가라는 매우 소중한 시간적 비용도 지출한다. 또한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한다는 심리적 비용도 이미 매우 크게 지불한 상황이다. 그런데 이렇게 높은 비용을 지불하고 간 휴가지에서 10시간 가까이 기다린 후 먹은 돈가스가 맛이 없다면 본인 자신이나 동행한 가족들에게 얼마나 큰 죄책감을 느껴야 할까? 자신이 지출한 이 모든 비용들이 헛되게 쓰였다면 자신은 결코 용서받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돈가스가 겁나게 맛있어야 한다. 모든 비용을 지불할 만큼 맛있어야 한다. 이 지점에서 기대는 자기 합리화로, 자기 합리화는 열성  팬심으로 바뀌게 된다. 

반면에 기대가 안티 팬으로 바뀌는 과정에는 '기대-성과 이론'의 영향이 작용한다. 우리는 만족이라는 단어를 수시로 쓰고 듣지만 의외로 만족의 실체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경우가 고객은 왕이다라는 표어를 떡하니 붙이고 있는 가게들이다. 고객들이 왕처럼 까다롭게 군다면 이를 만족시킬 방법 따위는 애초에 없다. 그리고 절대 고객을 왕처럼 대해서도 안된다. 그 이유는 기업은 적절한 수익의 창출을 통하여 존재하기 때문에 고객관리에 소요되는 비용이 지속적으로 수익을 초과한다면 그 어느 기업도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Vroom은 기대-성과 이론을 주장하였는데, 이를 만족 개념에 적용하면 결국 만족이란 "고객이 기대하는 요구수준을 얼마나 잘 충족시켜주는가"의 정도이다. 실제로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를 사 먹을 때와 고급 호텔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사 먹을 때 우리는 각기 다른 수준의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 최근 자동주문 기계가 패스트푸드점에 들어오고 있지만, 이에 대한 거부감은 거의 없다. 그러나 고가의 호텔 레스토랑에서조차 자동주문 기계를 이용해야 한다면 불만은 급증할 것이다. 연돈 돈가스에 이 이론을 적용해 보자. 이 곳을 방문한 고객은 이미 방송에서의 호평, 인터넷의 후기, 그리고 자신이 들인 시간과 노력이 더해져서 가게에 대한 기대감은 훨씬 높아진 상태일 것이다. 그리고 기대감이 높아진 만큼 이를 채워줄 수 있는 최소한의 만족 수준에 대한 마지노선도 같이 올라가 있는 상태이다. 서울에서 장사를 하였을 때와 동일 혹은 약간 더 맛있는 돈가스를 만들어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기대 수준에 미치기는 어려울 수 있으며, 그 결과 기대는 실망으로, 실망은 안티 팬으로 바뀌게 된다. 

다만 지대한 관심이 팬 혹은 안티 팬으로 돌아서는 지점에서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은 왜 두 사람은 각기 다른 길을 가게 되었을까에 대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당연히 개인적인 성향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개인의 성격, 낙관적인 정도, 연령, 소득 수준 등이 인내심과 분노, 자신이 들인 비용에 대한 평가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선천적인 특성과 감추어진 데모그래픽 정보들은 마케터가 통제 불가능한 요인에 가깝다. 보다 고객 관리에 필요한 요소들로 눈을 돌려 보면 기업의 기대 관리와 경험의 질 관리 문제로 접근할 수 있다. 이 돈가스집은 튀김 요리가 실제로 제공할 수 있는 천상의 맛 이상으로 지나친 환상을 심어준 것이 아닐까? 자의든 자의가 아니든 방송과 언론을 통하여 부풀려진 명성 때문에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하게 된 것은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켜지지 않는 약속은 대가를 치른다. 하지만 이미 높게 형성된 고객의 기대 수준을 만족시키기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낮추는 것 역시 가능한 선택은 아니다. 단지 맛 만으로 채워지기 힘든 기대와 실제 만족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서는 감성적 요소가 부가되어야 한다. 훌륭한 매장 환경, 분위기, 감성적인 브랜드 스토리, 친절, 제주도와의 연계성 강화, 지속적인 고객과 상호작용을 어떻게 해나갈지가 앞으로의 큰 숙제가 될 것이다. 아울러, 대기시간과 관련된 경험의 질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대한 숙제도 필요할 것이다. 인터넷 예약을 통하여 방문객의 대기 시간을 줄이려는 노력은 하고 있지만, 예약 시간에 맞추어서 관광 일정을 조정해야 하는 것이 얼마나 큰 어려움인지 아직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딱딱한 시간 예약을 하기보다는 하루 일정 판매량을 정해놓고, 사전에 지불결제까지 완료한 고객은 언제라도 와서 먹을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일시적으로 몰리면 기다리는 경우도 생기겠지만 몇십 분 정도 기다리는 것은 이미 감수하고 있는 고객들일 테니 말이다. 그리고 고객들이 오랜 시간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이미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 어떤 작은 이벤트들이 가능할까에 대한 고민도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노력을 하더라도 안티 팬이 생기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당초에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것은 종교, 문화, 예술, 사람, 정치 모든 면에서 가능하였던 적이 없었던 점을 상기하자. 이 사실을 이해하면 안티 팬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안티 팬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자세가 더 중요하게 된다. 안티 팬은 항상 기업과 브랜드의 악인가? 이들이 필요악임을 이해하자. 이들은 우리가 친근함과 열광, 환호 속에 가려져서 보지 못했던 것을 보여주는 소중한 존재이기도 하다. 로마 가톨릭에서는 성인을 추대할 때 성소에 모인 추기경들의 심사를 통하여 선출한다. 이때 성인 후보자에 대한 의견을 청취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반드시 악마의 대변인을 두도록 되어 있다. 악마의 대변인은 의도적으로 반대 입장을 취하면서 성인 추대가 불가한 이유를 집요하게 주장한다. 이들의 주장은 악의에 기반한 것은 아니며 단지 다양한 시각의 토론을 활성화시키거나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마찬가지로 안티 팬은 왜 고객이 우리를 싫어하는지 이유를 찾는 정보의 근원이 될 수 있으며, 이탈 고객을 관리하고 제품과 서비스의 개선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발전은 맹목보다는 항상 의심과 비난 속에서 시작되어 왔다.

: 청주대학교 이원준 (meetme77@naver.com)

728x9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