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과거 국내의 한 이동통신사에서 마케팅을 할 때 당연한 일이지만 우리 팀과 회사의 전 직원은 자기 회사의 통신서비스만을 이용하고 있었다. 경쟁사가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는지, 가격이나 고객 관리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는 전혀 경험할 수 없었으며, 시장조사 회사나 신문 보도 등 간접적으로 정보를 얻어서 대응하고 있었다. 이후 IT제조 기업으로 옮긴 후에도유사한 경험을 하였다. 동료 직원의 집들이날 참석한 부장과 동료 직원들의 눈은 식탁 앞의 맛있는 음식을 보기 전에 먼저 벽에 걸린 TV나 냉장고, 세탁기는 어느 회사 제품인지 흝어보기 바빴고, 모두 우리 회사 제품임을 확인한 이후에야 역시 훌륭한 직원이라는 칭찬이 여기 저기 쏟아졌다. 물론 경쟁사에 대한 정보는 보고서나 인터넷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알고 얻고 있을 뿐이었다. 우리는 하나라는 의식, 이게 정말 답일끼?

Devil's advocate, 즉 악마의 대변인은 다수의 의견에 대하여 의도적으로 잘못된 점을 찾고 비판을 제기하는 사람이다. 의도적이란 원래 성격 때문에 꼬투리를 잡는 것은 아니며, 주어진 역할에 따라서 계획적으로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는 것이다. 원래 악마의 대변인 제도는 절대 권력에 순응하는 집단 동조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중세 시대 카톨릭에서 고안된 제도이다. 과거 카톨릭에서는 성인을 추대할 때 일부러 성인 후보자의 결함이나 의심스러운 점들을 지적하는 역할을 맡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들을 악마의 대변인이라고 불렀다. 악마의 대변인 제도를 둠으로서 새로운 시각으로 문제를 다시 볼 수 있고, 집단 사고의 함정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즉 반론의 자유를 보장함으로서 더 나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된다.

특히 다수 전문가의 참여와 의견 제시를 통하여 더 나은 결과를 기대하는 토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악마의 대변인이 제 역할을 한다. 으례 전문가 집단이 보이면 원활한 토의와 다각적인 분석이 일어날 것으로 기대하지만 현실은 그렇치 못하다. 바로 집단사고(group think)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집단사고는 응집력 높은 집단들의 조직구성원들이 갈등을 최소화하고 의견 일치를 만들어내기 위하여 비판적인 생각 자체를 하지 않으려는 잘못된 현상이다. 서로 굳이 의견을 나누지 않아도 이심전심으로 마음이 통한다는 위험한 가정, 그리고 조직내 다수 의견에 반대하는 것이 옳치 않으며 아마도 틀린 생각일 것이라는 근거없는 추측이 원인이 되며, 집단 사고에 빠진 조직에서는 결코 틀린 일에도 반대 의견을 내지 않는다. 실제로 항공기 사고를 조사해 보면, 부조종사보다는 권위가 있는 조종사가 운항한 경우의 사고율이 더 높다고 한다. 부조종사가 조종사의 권위에 복종하여 잘못된 일에도 반대 의견을 내지 않기 때문이다.

악마의 대변을을 잘 활용하여 집단사고의 함정을 피하고 성공적 의사결정을 내린 대표적인 사례가 케네티 대통령 때 발생한 쿠바 미사일 위기이다. 1962년 미국 대통령인 케네디는 소련이 쿠바에 핵미사일 기지를 건설중이라는 소식을 받는다. 쿠바는 미국 플로리다 바로 아래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쿠바의 핵은 미국에 큰 재앙으로 인식되었으며, 다수의 미국 장관, 정보 전문가 집단, CIA는 긴급하게 회동을 하였다. 이들은 자칫 잘못해서 전쟁이 발생하면 최소 1억명 이상의 미국인이 희생될 수도 있는 초대형 위기에 대응하기 위하여 거의 2주동안 잠도 자지 못하고 밤낯으로 회의를 하였다. 그러나 이 중요한 회의에 케네디 대통령은 뜻밖의 원칙을 제안 한다. 자신은 회의에 출석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만일 자신이 직접 출석하여 발언한다면 전문가들이 자신의 의견을 내지 않거나 대통령의 의견을 그대로 따를 가능성이 크며, 그 결과 바람직한 최선의 해결책을 낼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또한 회의 석상에서는 관료들간의 직급이나 서열을 무시할 것을 지시하고 국가 안전 보장에 관해서 누구나 자기 의견을 낼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대통령 고문중 한 사람을 지정하여 공식적으로 악마의 대변인 역할을 맡겼다.

이후 처음 논의는 전쟁도 불사하고 미사일로 선제 공격하자는 다소 위험한 방안으로 지배적이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미사일을 실은 소련 선박이 접근할 수 없도록 해상 봉쇄를 하자는 의견이 추가로 제시되었다. 특히 군부는 선제 공격을 강력하게 주장하였지만 팽팽한 토의는 계속될 수 있었고, 최종적으로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고려하는 해상 봉쇄 작전이 시행되었다. 만일 이때 다수의 선제공격파 의견이 비판없이 수용되었다면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수한 엘리트 전문가들이 모여있는 대기업에서도 터무니 없는 불상사가 발생하는 일들은 종종 있다. 그 유명한 혁신가인 스티브 잡스마저도 타인의 의견을 듣지않고 자신이 옳다고 고집을 부리다고 실패한 경험이 적지 않다. 애플2 컴퓨터로 성공을 거두었던 그는 성공의 여세를 몰아가기 위하여 1983년 혁신적인 개인용 컴퓨터인 '리사(Lisa)'를 출시한다. 리사는 향상된 컴퓨팅 성능과 뛰어난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 기반의 운영 체제를 처음 장착하였지만 당초 2,000달러로 설정하였던 목표 판매가격이 추가적인 성능향상과 개발로 9,995달러까지 올라가겠 되었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성공 가능성이 낮음을 들어 출시를 만류하였지만, 그는 결국 듣지 않았고 리사는 마케팅 역사에 남을 처참한 실패를 하게된다. 스티브 잡스는 이후 큰 타격을 받고 오랫동안 자신이 사랑하던 애플 컴퓨터에서 쫓겨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사례는 기업이 중대한 의사결정의 기로에 서게 되었을 때 목소리 크거나 권한이 높은 몇몇 사람의 의견을 쫓기 보다는 악마의 대변인 제도를 적극 이용할 필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 청주대학교 이 원준 (meetme77@naver.com)

728x90

+ Recent posts